
고인돌이란?
명칭
고인돌이란 순수한 우리 나라 말로 큰 바위(돌) 아래를 3∼4개의 돌로 괴여서
받치고 있다고 해서 "고인돌" 이라고 하는데 학술상 고인돌(支石墓)의
일반적인 의미는 지상(地上)이나 지하(地下)의 무덤방(石室) 위에 거대한
덮개돌(上石)을 덮은 선사시대(先史時代) 무덤의 하나로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일종이다.
거석문화는 자연석 또는 가공한 돌을 사용한 건조물(建造物)로 고인돌외에
선돌(立石)·열석(列石)·환상열석(環狀列石)·돌널무덤(石棺墓)·돌무지무덤
(積石墓) 등이 있다. 고인돌은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고 있지만 공동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墓標石),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 의식을 행하는
제단(紀念物)으로 사용되는 것도 있다. 선돌(立石)은 생산(生産)과 풍요(豊饒)의 상징인 남성의 성기신앙(男根信仰)과 관련된 유적, 일출(日出)과 관련된 태양숭배 유적, 제단의 기능, 천문학적인 기능으로 보기도 한다.
고인돌의 명칭은 한국(韓國)에서는 지석묘와 함께 사용하며, 일본(日本)에서
는 지석묘(支石墓)로 부르고 있다. 중국(中國)에서는 석붕(石棚) 또는 대석개묘
(大石蓋墓)라 하고, 이외 지역에서는 돌멘(Dolmen)이나 거석(巨石, Megalith)
으로 부른다. 고인돌의 축조시기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는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
에, 일본에서는 죠오몽(繩文) 만기(晩期)에서 야요이(彌生) 중기(中期)까지,
서유럽에서는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에서 청동기시대 초기까지, 동남아시아에
서는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歷史時代)에 이르기까지 거석숭배(巨石崇拜) 사상에
서 만들어진 것이다.
일반인들이 고인돌에 대해 부르는 별칭은 자연석이 땅에 묻혀있는 것에서 독배기, 바우배기 등 독바우로, 받침돌(支石)이 있는 남방식(南方式)의 경우 괸바우·암닭바우로, 상석의 형태에 따라 거북바우·두꺼비바우·개구리바우로, 민간신앙과 연관시켜 고인돌의 배치상에서 칠성바우, 옛날 장군이 돌을 옮기다가 말았다는 전설이 많아 장군바우 등으로도 불리운다.


모양및 형태
고인돌의 모양과 형태는 각 지역에 따라 그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이는 각 지역마다 전통과 독자적인 문화속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한국 고인돌의 형태 분류는 학자들간에 여러 이견이 많지만 크게 북방식(北方式), 남방식(南方式), 개석식(蓋石式) 등 3종류가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러한 3가지 형식들이 한국 어디에서나 발견되고 있어 북방식은 탁자식(卓子式), 남방식은 기반식(碁盤式-반둑판식), 개석식은 무지석식(無支石式) 또는 변형고인돌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매장시설이 지하에 설치되어 있는 것은 남방식, 매장시설이 지상에 있는 것이 북방식으로 쉽게 구분된다.
북방식고인돌
(北方式支石墓)은 잘
다듬어진 판석(板石)
3매 또는 4매로 짜맞춘
석실을 지상에 축조하고
그 위에 편평하고
거대한 판석모양의 돌을
얹어놓아 마치 책상모양
을 하고 있어 이를
탁자식(卓子式)이라고도
부른다. 대형의 북방식은 요동반도(遼東半島)와 한국 대동강유역(大洞江流域)에서만 나타나고 구릉이나 산중턱에 1기씩만 있다. 이외 지역의 북방식은 규모가 작고 석실 폭도 좁고 덮개돌이 두터운 것들이다. 일본(日本)에는 이 형식이 없다. 동남아시아나 지중해 연안에 북방식과 비슷한 고인돌이 있으나 한쪽 단벽에 구멍이 뚫려져 있다. 서유럽의 고인돌은 길죽한 돌 여러 매를 세워 긴네모꼴(長方形)의 석실을 지상에 만들고 그 위에 여러 장의 큰돌로 덮는 것이 특징적이다. 형태상 덮개돌이 1매인 차이는 있지만
인도(印度)와 동남아시아, 중국(中國) 절강성(浙江省), 제주도(濟州道)에서도
보인다.
남방식고인돌(南方式支石墓)은 판석을 세우거나 깬돌(割石)로 쌓은 석실을
지하에 만들고 그 주위에 받침돌을 4∼8개 정도를 놓고 그 위에 커다란
바위같은 돌로 덮어 마치 바둑판모양을 하고 있어 이를 기반식(碁盤式)
이라고도 부른다. 덮개돌이 거대하고 괴석상태를 한 것은 호남과
영남지방에서만 보이고 석실이 없는 것이 많다. 일본이나
동남아시아에서는 소형의 덮개돌에 받침돌(支石)을 고인 것들이어서 덮개돌이 거대하고 웅장한 형태는 우리 나라 밖에 없다.
개석식고인돌(蓋石式支石墓)은 지하에 만든 석실 위에 바로 뚜껑으로 덮개돌
이 놓인 형식으로 요동반도, 한국, 일본 구주지역(九州地域)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이는 받침돌이 없는 남방식으로 분류되며 무지석식(無支石式) 또는 변형
고인돌로 불리운다.
고인돌의 무덤방(石室)은 돌널형(石棺形),
돌덧널형(石槨形), 구덩형(土壙形),
독널형(甕棺形)이 있고, 그 평면 형태는
긴네모꼴(長方形)이 대부분이다. 돌널형과 돌덧널형은 중국, 한국,
일본에서도 보이지만 지역에 따라 약간 다르다. 특히 독널형은 일본
구주지역(九州地域)의 지역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고인돌 하부구조
석관형 석곽형






자연환경의 조건에 따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선사시대 사람들은 항상
영혼불멸(靈魂不滅)한 자연(自然)의 사물(事物) 즉, 돌에 대한 숭배나
신앙에서 거대한 바위를 이용한 기념물을 축조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죽은 사람을 살아 있는 시체로 취급하기도 하고, 시체 자체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에서 죽은
사람이 다시 활동할 수 없게 하기 위하여 시체를 매장한 뒤 그 위에 큰돌을 덮었을
것이라고 한다. 고인돌의 껴묻거리(副葬品)로 주로 무기(武器)들이 출토되고, 덮개돌
측면에 간돌검(磨製石劍)을 새겨놓은 것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지켜주고 보호해 준다는
관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인돌이 분포된 지형은 큰 강이나 하천변의 평지, 구릉상, 산기슭, 고개마루 등으로
사람이 활동하는 주변을 택하였다. 고인돌을 만드는데 있어 무거운 돌을 운반하여야
하기 때문에 덮개돌을 구하기 쉽고, 이동이 용이하고, 사람들이 활동하는 지역이 고려되었다.
고인돌의 덮개돌 무게는 보통 10톤 미만이지만 대형의 북방식(北方式)과 남방식은 20∼40톤에 이르며, 초대형 덮개돌은 200톤 이상도 있다. 이러한 고인돌을 축조할 때 가장 어렵고 중요한 작업이 덮개돌의 채석(採石)과
운반(運搬)이다. 덮개돌은 주변 산에 있는 바위나 암벽에서 떼어낸 돌을 이용하고 있다.
암벽에서 덮개돌을 떼어내는 데는 바위틈이나 암석의 결을 이용하였는데, 그 흔적은
덮개돌의 측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구멍자국이 남아있는 것으로 증명된다.
이러한 덮개돌은 동원된 사람들에 의해 고인돌을 축조하려고 하는 장소로 옮겨지게 된다.
실험에 의하면 덮개돌 1톤의 돌을 1마일(1.6km) 옮기는데 16∼20명이 필요하며, 32톤의
큰돌을 둥근 통나무와 밧줄로 옮기는데 2백명이 필요하다는 연구가 있다. 이로 볼 때 한
사람당 100kg의 힘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떼어낸 덮개돌을 운반하는 방법은 여러 개의
둥근 통나무를 엇갈리게 깔고 덮개돌을 옮겨놓아 끈으로 묶어 끈다거나 지렛대를
이용하는 방법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고있다.
북방식은 지상에 있는 무덤방(石室) 축조에 많은 노력을, 남방식은 거대한 덮개돌을
이동하는데 어려운 점이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운반되어 온 덮개돌은 지상이나 지하의
무덤방 또는 받침돌(支石)에 흙을 경사지게 돋우고 그 위로 덮개돌을 끌어올린 후 흙을
제거하였다고 추정된다.
이러한 고인돌의 운반과 축조는 당시 사회에서 거족적(擧族的)인 행사로 치러졌다.
북방식(탁자식)은 석실과 지석에 흙을 경사지게 돋우고 상석을 끌어 올린 후 흙을 제거한다.
축조배경

축조방법

